깊은 숲 속 마녀와 아이

몽치(@mongchi_cmcm)님 타로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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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마녀 유우와 유우를 만난 그림

마녀 유우는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소문이 돌곤 하는 유명한 마녀입니다. 어떤 마을에서는 그녀를 재앙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다른 마을에서는 유우를 축복 그 자체라 부르기도 합니다. 크고 무시무시한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유우는 유명인 그 자체입니다. 때문에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그림이 유우의 명성을 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림은 마을에 서너 명씩 있는 고아입니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자신은 어째서 이 마을에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해요. 길고양이처럼 집 없이 떠도는 처지이지만, 그림에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간 자신도 마법사가 되어서,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마리라는 것이에요. 그 첫 번째 단계로, 유우의 제자가 되기 위해 유우를 찾아가기로 맘먹습니다. 검은 나무가 햇빛마저 가려버릴 정도로 울창한 숲. 방향도 정확한 지역명도 모르지만, 단 한 문장의 이야기로밖에 전해지지 않는 곳을 찾아 무작정 떠납니다.

그림은 유우에 관한 이야기라면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검은 머리카락은 그림자를 잘라다 붙인 것 같고, 눈은 밤하늘처럼 빛나며, 때때로는 흰 태양빛처럼 빛난다고요. 아무리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머리카락이 물감을 칠한 것처럼 바뀔 수 있나? 싶습니다. 게다가 손짓 한 번으로 달을 떨구고, 해를 끌어올린 다뇨. 마녀가 아니라 신이 와도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들은 오히려 그림의 꿈을 무럭무럭 키워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자신이 마법사가 된다면, 그 힘으로 자신을 무시했던 동네 꼬마들을 죄다 놀려 주리라고 마음먹어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드디어 그림은 유우가 사는 숲에 도착합니다.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황량하고, 이따금씩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려와요. 그림은 무서움에 꼬리가 바짝 서는 것을 간신히 가라앉히곤 외딴 오두막의 문을 두들깁니다. 이 문 너머에 그렇게 만나길 바라던 대마녀가 서 있다니, 쿵쿵대는 그림의 심장소리가 숲 전체를 울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끼익. 문이 열리고, 그림이 마주한 사람은 그림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소녀였습니다. 그림은 맥이 탁 풀려서, 하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고 해요.

그림은 그간 꾸었던 꿈이 펑. 풍선처럼 터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명 키도 크고, 바닥에 질질 끌리는 망토를 두르고 다닐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그야. 그림이 들었던 유우의 모습은 대마녀 그 자체였는걸요. 하지만 그림의 눈에 들어온 유우는, 흰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맹랑한 소녀에 불과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며 투덜댈 수도 있겠어요.

오히려 당황한 쪽은 유우입니다. 누군가 문을 두들겨 나가 보았는데, 고양이를 닮은 소년이갑자기 펄쩍 뛰며 비명을 지르지 않나. 내가 상상한 마녀는 이런 꼬맹이가 아니라구~! 라고 다짜고짜 무례한 말을 하지 않나. 유우는 그런 그림을 생쥐로 만들어 버릴까. 생각했어요. 게다가. 그림은 유우보다 더 작고 어려 보이는걸요. 그런데 누가 누구 보고 꼬맹이라는 건지, 원. 작고 맹랑하고 무례한 꼬마. 이것이 그림을 본 유우의 첫 감상입니다.

그림의 사정을 들은 유우는 깊은 고민에 빠져요. 자신이 마녀인 것도 맞지만,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해 주었는데도 그림은 순순히 돌아갈 기색이 없습니다. 따뜻한 코코아에 쿠키를 내어 주며 그림에게 사정을 묻습니다. 그림은 풀 죽은 꼬리를 매만지며 자신은 돌아갈 곳도, 기다리는 가족도 없다고 털어놓아요. 늘 어두운 곳에서 혼자였기에, 자신이 대마법사가 된다면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볼 것이라 생각했다나요. 유우는 그런 그림의 사정을 듣고 어쩐지 자신과 엇비슷하다 생각했습니다. 동경의 대상, 하지만 동시에 기피의 대상이었던 유우는 외딴 숲 속 오두막에서 늘 혼자 생활했어요. 자신과 함께해주는 것은 저주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는 마력과, 이따금씩 빵을 얻어먹으러 놀러 오는 종달새 뿐. 유우는 눈을 한 번 느긋하게 감았다 뜹니다. 그리곤 그림에게 손을 뻗어요. 그림을 유일무이한 제자로 삼아 주겠다고요. 그림은 시릴 정도로 푸른 눈을 한 번 빛낸 후, 그제야 배시시 웃으며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가족이 되어 주기로 약속했어요.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림은 집안일을 배우는 대신, 유우에게 조금씩 마력을 넘겨받기로 약속했어요. 본디 마력은 시전자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긴 시간동안 천천히 넘겨주는 것도 가능하다는 유우의 말에, 그림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라 했습니다. 둘은 함께 아침밥을 먹고, 이따금씩 억새 나부끼는 들판으로 산책을 가기도 하며,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스르르 잠드는 일상을 공유합니다. 그림이 처음 꽃을 피워내는 마법을 성공한 날, 유우보다 키가 커진 날, 유우가 조금씩 잠이 많아지던 날까지 전부. 감히 다른 이가 침범할 수 없는, 두 사람만의 기억이자 일생입니다.

유우는 그림에게 마력을 넘겨주는 대신, 틈틈이 그림의 미래를 보아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들 하지요. 그림이 마력을 가진 후 어떤 일을 저지를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심지어 시전자인 유우도요. 유우는 큰 힘을 마구 사용하다 홀로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된 이를 수없이 보아 왔어요. 영원에 가까운 세월을 사는 마녀니까요. 평생을 외로움에 시달려 왔던 그림이 또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은 싫습니다. 하지만 유우가 본 그림의 미래는, 어딘가 이상해요. 훌쩍 커 버린 그림의 곁에는 누군가가 서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자세하게 볼 순 없지만, 적어도 그림이 다시 혼자가 되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도해요.

그림은 어느덧 오두막 천장에 손이 거뜬히 닿을 때 까지 커졌습니다. 그러나 그와 다르게, 날이 갈수록 왜소해지는 유우가 걱정됩니다. 이상해요. 마녀는 영원을 산다고 했는데, 어째서 유우는 매일 아침잠이 많아지는 것인지……. 불길한 예감이 그림의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그림은 수없이 보았던 마법 이론 책을 뒤지기 시작해요. 그리고 책장의 끝. 익숙한 유우의 글씨체로 빼곡히 글씨가 적힌 수첩을 발견합니다. 마력의 이동과 마녀의 최후에 대해서 적혀 있어요.
 

마녀는 마력을 후계자에게 일임한 후,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고 끝을 맞이한다.

 

이 문장을 본 그림은 세계가 뒤집히는 것 같은 슬픔과 분노를 느낍니다. 그야. 유우는 자신에게 이런 제약이 있다는 걸 말해주지 않았는걸요. 기껏 찾은 가족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며, 그림은 유우를 처음 만난 날 그 작은 꼬맹이처럼 눈물을 떨굽니다. 어느덧 머리가 새하얘진 유우는 그런 그림의 손을 꼬옥 잡으며 약속해요. 이번 생에는 그림이 자신을 찾아와 주었으니, 다음 생에는 자신이 그림을 찾아오겠다고요. 자신 또한 어렵사리 찾은 가족과 이별하고 싶지 않다고 말이에요. 수백, 수천 년을 기억하는 유우기에 분명 전생 또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덧붙입니다. 그림은 귀를 추욱 늘어뜨리며, 겨우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어요. 다행이라며 살포시 웃는 유우를 보며, 그림은 그제야 흰 태양빛처럼 빛나는 백발의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유우는 정말로 자신의 세상을 바꾸어 주었고, 검은 머리와 흰 머리를 한 번에 가질 수 있었던, 정말로 위대한 마녀였어요.

그리고 며칠 후, 나라에는 새로운 소문이 퍼졌습니다. 새로운 대마법사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에요. 그의 머리칼은 잿빛 구름을 먹어치운 것 같이 보드랍고, 온 숲을 태울 수 있을 만큼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을 조종한다고요. 그리고 하나 더, 이별한 가족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이야기도 말입니다.

치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