運命論

몽치(@mongchi_cmcm)님 타로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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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1y7I8I0U0rs?feature=shared

세간에서는 그런 것들을 흔히 운명이라고 불러왔어.

요괴 그림과 인간 유우의 이야기

어느 번성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배곯을 걱정 없이 이야기와 노래를 즐기는 곳, 용과 요괴, 신과 선녀의 이야기가 날마다 들리는 곳. 하지만 평화는 영원하지 않은 법이죠. 그렇게 번성했던 나라가 옆 나라와 싸움이 일어나리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모두가 폭풍전야의 분위기 속에서 점점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될 때, 그림과 유우는 만났습니다.

그림은 어느 숲에서 태어난 요괴입니다. 다른 요괴들이 그렇듯, 부모도 연고도 없이 떠돌던 그림은 사람들의 마을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네 아이들이 도둑고양이라며 그림을 못 살게 구는 바람에, 제대로 된 마을 구경도 못 해 보고 있던 찰나에, 달밤 아래에서 춤을 추는 유우를 만나게 됩니다.

유우는 전국을 돌아다니는 마당패의 일원입니다. 유우는 특히 신비롭고 이국적인 춤으로 사람들을 모으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유우가 밝은 햇빛 아래에서 춤추는 것을 구경하러 매일같이 장터로 모였습니다. 유우의 인기는 최고였고, 유우 또한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림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유우는 이전과 같이 떠돌이 생활을 즐겼을 거예요.

어느 날 밤, 유우는 몰래 마당패의 숙소를 나와 달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낮에 마당패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몰래 들었기 때문일까요. 유우의 마음은 거세게 파도치는 바다만큼이나 심란합니다. 조금 있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는 어린 유우 또한 충분히 듣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마당패 어른들은 모두 전장으로 끌려가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유우 홀로 남게 됩니다. 유우는 그 전에 유우를 좋은 마을에 맡겨야 한다는 회의를 듣고야 말았어요. 유우는 마당패 어른들이 좋습니다.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좋은 옷, 맛있는 음식도 혼자라면 거칠고 질길 뿐입니다. 하지만 지금 유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한숨만 나옵니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자 유우는 흰 한삼을 꺼내들어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해요. 달빛을 조명 삼아 조금씩 발을 떼고, 팔을 공중에 내젓습니다.

그러던 중, 유우는 인기척을 느껴요. 깜짝 놀라 뒤돌아보면, 푸른 눈을 가진 그림이 홀린 듯 유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보다 작은 체구, 그리고 머리 위에 솟아 있는 고양이 귀. 유우는 본능적으로 이 아이가 인간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조금 꾀죄죄한 몰골의 아이를 경계하며 도망치려는 순간, 그림은 활짝 웃으며 말합니다. 멋있다…….
마치 한낮의 하늘마냥 맑고 푸른 눈을 빛내며 순수하게 웃어 오는 아이 덕분이었을까요. 방금 전까지 유우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 불안감과 경계심은 싹 씻겨 내려갑니다. 바로 그다음, 한삼을 달라며 펄쩍 뛰어오는 그림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지만요.

그림은 순간 유우가 선녀나 구미호 요괴인 줄 알았다고 해요. 하늘거리는 천이 공중에 펄럭였다가, 땅을 쓸었다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검은 머리카락은 달빛을 받아 검게 빛나고, 사뿐거리는 몸짓은 춤에 대해 모르는 그림이 보아도 정말 아름다웠다고 해요. 저 천은 분명 요술이 담긴 천일 것이라 생각한 그림은 다짜고짜 한삼을 내놓으라 달려들었다가, 평소 호신술을 단련하고 있던 유우에게 제압당합니다. 마냥 순진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라며 그림은 유우에게 맞은 배를 문질러요.

유우는 갑자기 한삼을 달라 우기는 그림을 보고 당황했습니다. 동네 거지 아이인 줄 알았는데, 그냥 어린 요괴였다니. 마당패 어른들에게 이야기해도 믿어 주지 않을 것만 같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그림이 있어 준 덕에 유우는 외로움이 조금 가셨어요. 찬찬히 그림의 행색을 살펴보니, 오랫동안 혼자였던 것 같은 모습입니다. 너도 나처럼 혼자구나. 유우는 혼잣말을 삼키며 그림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림은 순순히 유우의 손을 잡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어요.
유우는 갈 곳 없는 그림을 마당패에서 잠깐 머무르게 합니다. 마당패 어른들은 요괴가 사람을 홀린다며 내쫓으려 했지만, 유우의 고집에 결국 지고 말았어요. 대신, 밖에 다닐 땐 귀와 꼬리를 가릴 것, 우리가 다음 마을로 갈 때는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약속했습니다. 예정된 이별에 그림은 시무룩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유우와 함께할 수 있어 마냥 기뻐요.

두 사람은 동네를 쏘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만두 가게에서 만두를 사 먹기도 하고, 소리꾼을 흉내 내며 웃기도 하고, 유우의 공연 시간에는 그림이 가장 앞에 앉아 가장 크게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평소에도 곧잘 춤을 추곤 했던 유우지만, 그림이 곁에 있어 주면 더욱 하늘을 날 것 같이 뛸 수 있었어요. 어쩌면 그림이 자신을 요술로 도와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림은 유우가 좋습니다. 유우는 다른 동네 아이들처럼 자신을 도둑고양이라 칭하지도 않고, 돌을 던지지도 않으며, 새 옷과 음식까지 주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유우는 그림의 첫 친구입니다. 친구. 어쩌면 요괴로 살며 한 번도 들어 보지 못 했을 말이에요. 게다가 유우의 춤이 멋있다고 하자, 유우는 그림도 배워 보라며 흔쾌히 한삼을 빌려 주었습니다. 유우가 너무 좋아.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좋겠어. 만약 자신이 한낱 요괴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유우를 쫓아 다른 마을에도 갈 수 있을 텐데……. 그림은 유우와 즐거운 나날을 보낼 때 마다, 늘 이별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고 안타까워요. 마냥 멋지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요술이, 유우와 가까워질 수 없도록 누군가가 걸어 둔 주술 같다고 생각합니다.

유우는 그림을 남동생처럼 대해요. 자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오는 것이 마치 동생을 둔 것 같았으니까요. 또한 춤을 가르쳐 주면 배우고, 약과를 주면 잘 먹습니다. 이제 그림은 단순히 유우의 친구가 아니라, 가족 그 자체에요. 하지만 유우도 알고 있습니다. 유우는 인간이고, 그림은 요괴라는 것을요. 요괴는 함께한 인간의 행복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함께했다가는 유우가 불행해질 거예요. 어쩌면 가족 같은 마당패에게도 화가 미칠지모릅니다. 처음 그림을 만났을 때는 행복했지만, 이제는 이별이 다가올수록 하루하루가 괴로울 뿐입니다.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날도 많아지겠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우려하던 전쟁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마당패 어른들은 서둘러 짐을 싸고, 결국 그림과 유우도 예정보다 빠르게 이별 인사를 나누게 되었어요. 유우는 울며 그림에게 자신의 한삼을 건네줍니다. 나중에, 혹은 다음 생에서라도 만난다면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요. 그러자 그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우에게 약속합니다. 열심히 수련해서, 이다음에 신령이 되어 꼭 유우를 찾아가겠다고요. 이번 생에 안 된다면 다음 생에라도 유우의 곁에 남아, 결코 유우를 혼자로 만들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자신의 요술이 저주 같아도, 유우는 이 요술을 아름답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림은 유우를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요술을 열심히 갈고닦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유우는 산을 두 번 넘고, 계곡을 세 번 넘어 어느 마을에 도착합니다. 제법 깊은 산골인지라, 외부의 침략에 제법 안전한 곳이에요. 유우는 이 마을에 맡겨지게 되었습니다. 마당패 어른들은 소고와 북 대신 창과 칼을 들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유우는 홀로 마을에서 돌아올 어른들과, 언젠간 자신을 찾아 올 그림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길어졌으며, 인간의 시간은 요괴보다 빠르게 흐르기 마련, 유우가 장성한 여인이 되고, 결국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었어도 그 누구도 유우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어린 시절, 장터에서 누구를 만났는지도 선명히 기억나지 않아요. 기억하는 것은, 누군가가 꼭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약속. 울며 서로의 손을 잡았던 기억만큼은 나이 든 유우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입니다.

제비꽃 피는 어느 날, 유우는 너무 나이가 들어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 하게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유우가 오늘 안으로 돌아가실 것 같다며 침울한 분위기입니다. 유우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고, 더 이상 손 까딱 할 힘도 없을 때…….
방 안에 향긋한 꽃향기와 함께, 봄바람이 밀려들어옵니다. 그리고 유우가 본 것은, 훨씬 어른스러워진, 어린 날의 유일한 친구. 그림이에요. 한삼을 허리에 둘러 묶고, 구름을 탄 채 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위압감에 입을 떡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벌벌 떨지만, 유우만큼은 놀라지 않고 오히려 빙긋 웃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림은, 너무나도 늙어버린 유우를 보더니 울먹입니다. 너무 늦게 와 버렸다며 유우에게 용서를 구해요. 유우는 그런 그림의 손을 꼭 잡고는, 다시 한 번 부탁합니다. 이번 생에는 줄곧 혼자였으니, 다음 생에는 함께하자고요. 그림이 자신을 잊지 않은 것처럼, 다음 생의 자신 또한 그림을 잊지 않고 꼭 찾아가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림은 눈물을 꾹 삼키며, 유우가 자신을 기다려 준 것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유우를 기다리겠다고 말해요. 그런 그림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유우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 산골 마을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 신령과 한 소녀의 이야기에요. 어린 날의 약속을 잊지 않고 소녀를 찾아 온 신령은, 이제 소녀의 다음 생을 산골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요.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웃어넘겼지만, 적어도 그림이 유우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결코 허구가 아닙니다. 제비꽃 향이 흐르는 마을에서, 그림은 유우를 기다리고 있어요. 언젠간 자신을 찾아와 줄, 세상에서 달빛이 가장 잘 어울리는 소녀를요.

추가질문

Q. 혹시 다음 생에 만나게 된다면 유우가 인간으로 환생해서 만나게 되나요?
A. 네! 유우는 인간으로 환생해, 그림을 만나게 됩니다. 결국 유우가 인간인 이상 그림과의 이별은 예정되어 있어요.
하지만 전생과 다르게 유우는 그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둘은 더 이상 혼자일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아무리 이별이 예정되어 있다 해도, 두 사람은 함께 있는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할 거예요.

Q. 만나게 된다면 유우는 그림의 기억을 가진 채로 환생했을까요?
A. 아뇨! 안타깝게도, 전생의 유우를 기억하는 것은 그림뿐입니다. 하지만 그림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혼자가 된 유우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요. 유우는 그림과 함께할수록 전생의 기억이 돌아옵니다. 그러니 그림은 유우를 두 번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그 시간이 길다 한들 그림에게는 찰나의 순간입니다. 그러니 그림은 인내심을 갖고, 유우가 자신을 떠올려 줄 때 까지 기다려요.

Q. 둘의 반응은 어떤가요?
A. 모든 기억을 떠올린다면, 두 사람은 정말 기쁘다고 해요. 유우는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조금 불만인 모양이지만요. 하지만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서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충분히 만족합니다. 예정된 이별을 두려워하기보다, 서로와 함께인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어요. 그림은 또 다시 유우를 눈앞에서 잃을까 조금 두려워해요. 유우를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겠네요.
하지만 전생에서도 그랬듯, 유우는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별을 대하는 자세는, 그림보다 유우가 훨씬 어른스러워요. 그림은 유우와 평생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이 슬프지만, 유우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유우의 말대로, 이번 생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어도 되니까요.

굿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