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

보거님 글 연교

---

  잠은 때때로 죽음을 은유한다.
  모든 이에게 밤은 찾아오고, 졸음도 죽음도 공평하게 다가온다. 어린 장의사는 수없이 많은 영면을 지켜본 후 밤을 맞이해왔다. 장의사는 밀물처럼 차오른 보름달에 가만히 시선을 두다가 가게 문을 걸어 잠갔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시작됐다.
  죽음을 목도하기엔 아직 어린 장의사 ‘유우’는 이따금 자신과 아주 가까운 이를 잃은 듯한 착각에 시달리곤 했다. 그것은 대체로 꿈에서 그에게 가장 날카로운 형태로 다가왔고 그는 그 고통을 견디는 대신 잠에 들지 않기를 택했다. 매일 타인의 눈을 감겨주면서 자신은 불면을 자처하다니, 우스운 꼴이라 자조했으나 달리 방법도 없었다. 미어지는 듯한 가슴의 통증은 출처조차 알 수 없었으니.
  그럼에도 졸음이 필연적인 죽음처럼 쏟아져 내리는 날이 있었다. 밤하늘이 그의 어깨 위로 온통 흘러내린 것 같이 몸이 묵직해지는 그런 날. 유우는 반쯤 감긴 눈을 천천히 끔벅이며 생각했다. 또 다시 마녀의 저주가 찾아왔다고. 꿈결 속에서 유우는 언제나 동화 세계 속의 어떠한 엑스트라로 존재했다. 그곳에서 그는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손에 의해 파괴되는 무언가를 목도했다. 검은 재가 되어 흩어져 내리는 그것은 푸른 불꽃이 반짝이는 것을 끝으로 완전히 연소한다. 그것을 두 눈으로 끝까지 지켜보던 유우 자신은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맨 바닥을 긁으며 뻑뻑한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이름이라는 것은 인지할 수 있었으나 이름의 주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이즈 낀 것처럼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는 타인의 것처럼 다가왔다. 눈물로 바닥을 적시는 자신의 등을 받쳐주는 어떤 이들의 얼굴 역시 어린 아이가 아무렇게나 칠한 것처럼 엉망으로 지워져있었다. 소중한 것들이 모두 모르는 것이 되는 악몽은 고장난 필름과 같이 한 장면을 재생해왔고 유우의 불면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잠에 든 유우는 늘 옅은 신음소리를 낸다. 열 감기를 앓는 어린 아이처럼. 곁을 지키던 검은 고양이가 유연하게 허리를 펴곤 눈물에 젖은 유우의 뺨을 핥아 올렸다.

“쉿.”

  야옹, 대답하듯 짧게 운 고양이가 이내 유우의 곁에 둥지를 틀 듯 몸을 웅크리곤 주저앉아 느리게 하품했다. 제 반려인을 위로해줄 존재가 돌아왔음을 깨달았을 때, 그 고양이는 늘 같은 행동을 했다. 형체가 흐릿한 남자의 손이 마른 눈물에 건조해진 뺨을 쓰다듬곤, 다크 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은 눈가를 문질렀다. 동화 속 이야기는 어린 날 꾸었던 꿈결처럼 잊기를 바랐는데 유우는 현재의 삶이 꿈인 것처럼 굴었다. 목숨을 깎아내려 타인에게 달콤한 최후를 선물하고 자신은 언제나 불안정한 상태로 존재했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 그곳에 존재하던 그 시절처럼. 나무 빗자루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가 일 센티도 채 날지 못하고 함께 무너진 그때 처럼.

  혼령이 된 소년은 유우보다 조금 더 앳된 얼굴을 하곤 언제나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 사실 하나만큼은 이세계에서의 생활과 다를 것 없었으나 두 사람은 더는 닿을 수 없었다. 빗자루에서 꼴사납게 미끄러진 후 마주 보고 웃는 행위도 더는 할 수 없었다. 소년, 그림은 차가운 식은땀에 젖은 유우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듯 손짓하며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유우에게 생애가 악몽이 아니길. 그림은 늘 달에 대고 같은 소원을 빌었다. 시체와 같이 차가운 입술이 유우의 이마 위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아침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유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오늘도 그는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고 배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린 장의사는 거울 앞에 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다, 문득 자신의 눈물 자국이 조금 번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령의 장난일까. 유우는 제 뺨을 매만지듯 문질렀다. 악몽 대신 옅은 온기가 내려앉은 아침이었다.

양갱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