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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너는 나의 꿈을 방문했다.

꿈의 주인 그림×꿈의 방문자 유우
 

오늘은 그림에게 매우 고된 하루였어요. 아침부터 몰아치던 쪽지시험, 점심시간 이후 있었던 비행술 수업 시간, 그마저도 한 번 미끄러져 빗자루에서 떨어질 뻔하는 바람에 바르가스 선생님께 아주 혼나고 말았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낡은 기숙사에 돌아왔더니, 이번엔 천장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머리가 흠뻑 젖고 말았어요. 여러모로 악재입니다. 그림은 자 고 일어나면 내일은 더 좋은 하루가 될 것이라는 유우의 위로를 받으며, 겨우겨우 잠에 들어요. 유우는 마법을 쓰지 못하지만, 다정한 위로를 받을 때면 정말 유우의 말이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유우는 그림에게 있어서 유일무이한 마법사에요.

그림과 유우는 둘이서 한 학생입니다. 그러니 그림의 하루가 순탄치 못했다는 것은, 유우 또한 마냥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지 못했다는 뜻과 같아요. 쪽지 시험이야 어떻게 잘 넘겼다고 해도, 이어진 비행술 수업에서 그림이 다칠 뻔 한 탓에 유우도 그림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며 함께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게다가 낡은 기숙사의 가스가 나오지 않아 차가운 저녁밥을 먹어야만 했고, 창고에서 무거운 양동이를 끌고 와 물이 새는 곳에 받쳐두어야만 했어요. 여러모로 험난한 하루였습니다. 그런데도 옆에서 풀이 죽은 채 잠들고 있는 그림을 가만가만 달래주면서, 내일은 좋은 하루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어요. 이는 곧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믿으며 유우도 나란히 잠에 들어요.

그렇게, 유우는 그림의 꿈속에 들어갑니다.

그림의 꿈속은 어둡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함부로 발을 내딛을 수도 없어요. 한없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 유우는 문득 이전에 그림이 했던 이야길 떠올립니다. 유우가 오기 전까지 그림은 어둡고 추운 곳에서 하루 종일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했다고요. 너무나도 외로웠고 고독했다는 말을 하던 그림의 표정을, 유우는 선명히 떠올릴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때 그림이 이야기했던 곳에 유우가 방문한 것일지도 몰라요. 이런 어두운 곳에서 하루 종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는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니, 유우는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메어옵니다. 정말로 외롭고, 고독하고, 차가운 곳이에요.

그러던 유우의 시야에 무언가가 잡힙니다. 저 멀리,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어요. 유우는 발치에 무언가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조심스럽게 빛을 향해 나아갑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유우는 드디어 따뜻한 빛에 당도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발견합니다. 작은 양초가 빛을 내며 타들어가고 있고, 그 주변엔 쿠션 여러 개와 그림책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요. 자세히 보니, 낡은 기숙사에 있던 쿠션과 책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쿠션 더미를 베고 자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그림입니다. 고양이의 모습이지만,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배시시 미소 짓고 있어요. 유우와 함께했던 추억이 그림에게 온기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더 이상 그림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춥고 외롭지 않아요. 유우는 그 사실을 깨닫고서 가슴이 먹먹해져, 가만히 그림을 쓰다듬어 줄 수밖에 없었습 니다. 동시에 꿈에서 깨면, 그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겠다고 다짐해요.

그림은 꿈속에서, 유우와의 추억이 얼마나 자신에게 소중한지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유우와 함께하며 싸우기도 했지만, 그 모든 추억들은 그림에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추억이며, 유우와 함께하는 나날은 매일매일 행복했다고 합니다. 유우에게 제대로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유우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더라도 이 사실만은 잊지 않아주었음 해요.

다음 날 아침, 유우와 그림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먼저 일어난 쪽은 유우에요. 눈을 부비며 시각을 확인하고 있으면, 유우의 부재를 느낀 그림이 표정을 찡그립니다. 유우는 그런 그림을 살짝 흔들어 깨우며 좋은 아침. 이라고 인사해 주어요. 다행히, 푹 잔 덕에 어제 저녁보다는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그림은 가르랑대며 미소 지어요. 마치 꿈에서 본 것처럼 행복한 미소입니다.

두 사람은 이후 조금 더 돈독해집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즐기려고 노력해요. 비록 두 사람이 이후 헤어지게 되더라도, 함께 한 시간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런 확신이 있으니, 두 사람 모두 조금 마음이 후련해진 기분입니다. 앞으로 더 웃는 날이 많아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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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너는 나의 꿈을 방문했다.

꿈의 주인 유우×꿈의 방문자 그림

오늘 유우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어요. 요새 날이 서늘해지는가 싶더니, 감기에 된통 걸려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쩐지 어제 저녁부터 몸이 으슬으슬하다 싶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세상이 두 개로 흔들려 보이기 시작했어요. 유우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댄 그림은, 유우가 불에 타고 있다며 비명을 꺄악 질렀습니다. 그림의 비명을 들은 고스트들이 바삐 물수건을 가져오고,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마시자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지만, 오늘은 도저히 학교에 가지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림은 유우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면 자신도 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결국 에이스와 듀스의 손에 잡혀 끌려 나갔어요. 간만에 맞는 혼자만의 시간, 유우는 감기약을 애써 먹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몸이 아프니 이런저런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그림은 자신 없이 혼자 하루를 잘 보내고 있을지, 이렇게 아파 본 것도 몇 년 만인지……. 결국 유우는 잠의 수마를 이기지 못 하고 스르르 꿈나라로 향합니다.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그림이 돌아와 유우의 상태를 확인하는 중에도 깨어나지 않았어요.

그림은 위와 같은 이유로 하루 종일 저기압이었습니다. 분명 어젯밤에 자신이 이불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유우가 심한 감기에 걸린 게 분명하다며 슬퍼해요. 수업 시간에도 몇 번이고 이름이 불렸는데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점심을 깨작이다 결국 밥을 남겼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에이스와 듀스는 그림도 아픈 게 아니냐며 걱정했어요. 그리곤 유우는 강한 아이 니 내일이면 전부 나을 것이라고 그림을 위로해 줍니다. 하지만 그림은 여전히 불안했는지, 방과 후, 낡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구매부에서 감기에 좋다는 약을 삽니다. 이 약 한 병을 사느라 그림의 삼주 치 용돈이 몽땅 날아가 버렸지만, 그림은 아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요. 하지만 그림의 노력이 무색하게, 유우는 그림이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잠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림은 이름을 불러도 반응 없이 색색 잠든 유우를 보곤, 마치 동화책 속에서 저주를 받고 잠들어 버린 공주님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요. 이럴 땐 백마를 탄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 키스로 저주를 풀어 주던데, 그림은 백마를 탈 줄도 모르고, 멋진 왕자님도 아닙니다. 그림이 할 수 있는 것은, 유우의 상태를 확인한 후 카우치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청하는 것뿐이에 요. 내일 아침이 되면, 유우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면서요.

그렇게 그림은, 유우의 꿈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림은 축축한 비 냄새를 맡으며 눈을 뜹니다. 그리곤 드넓은 숲을 마주해요. 짙은 녹색의 나뭇잎들이 하늘을 빼곡히 가리고 있어 햇빛 한 줌 들지 않습니다. 숲 속엔 옅은 안개가 유유 자적 흐르고 있어요. 그야말로 몽환적인 장면입니다. 그림에게는 더없이 으스스한 풍경일 수 도 있겠지만요.

축축하게 습기를 머금은 잔디가 자꾸만 그림의 발치를 스쳐서,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그림의 신발은 온통 젖어 버렸습니다. 정말 기분 나쁜 곳이라며 인상을 팍 찌푸려요. 유우는 이런 꿈을 매일 꾸는 것일까. 늘 자신에게는 웃어주었으면서 한편으론 혼자 힘든 광경을 마주하 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자신에게는 힘들다 소리 한 번 하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 그림의 귀가 축 쳐집니다. 연인이 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그림은 아직도 유우에게 어린아이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등한 연인이 되면, 유우가 조금이라도 더 자신에게 의지해 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그림이 한숨을 푹 쉬며 얼굴을 찡그릴 무렵, 그림의 시야에 무언가 흰 형체가 잡힙니다. 그림은 꼬리를 삐죽 세우며 고개를 두리번거려요. 서, 설마. 유령?! 그림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 곤 몸을 오들오들 떱니다. 어쩐지 계속 이 숲을 맴돌고 있던 안개가 더 짙어진 느낌이에요. 형체는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그림의 주변을 맴돕니다. 그림은 유령에게 잡히면 큰 일 날 것만 같은 직감에 풀숲에서 풀숲으로 숨어 다녀요. 그러나 점점 유령은 그림에게 가까 워지고, 이윽고 둘의 거리가 채 십 미터도 되지 않았을 때, 그림은 유령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 유우에요. 흰 시폰 원피스만 입은 흰 머리의 유우가 맨발로 숲 속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발은 온통 상처투성이에, 매우 지쳤는지 안색은 그닥 좋지 않아요. 누군가를 찾는 듯 입을 달싹이며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그림은 그 광경을 목격하곤 뜨악하고 놀라요. 저렇게 얇게 입고 다니니 감기에 걸릴 만하지! 그림은 후다닥 뛰어나가, 유우를 꼭 안아 줍니다. 비록 자신도 춥고 으슬으슬하지만, 그보다 유우가 더 따뜻했으면 좋겠는걸요. 그림에게 있어 유우는 그런 존재입니다. 비록 작은 온기일지라도 유우에게 주고픈 마음이에요. 유우가 그림을 아끼고 좋아하는 만큼, 혹은 그보다 더, 그림은 유우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어쩐지 유우가 미소 지은 것 같았습니다.

그 때, 하늘을 가리던 활엽수들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갔는지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합니다. 어두운 숲 속, 스포트라이트처럼 내리꽂히는 햇살들이 그야말로 장관을 만들어내요. 따뜻하고 밝습니다. 그 경이로운 풍경에 그림도 배시시 미소 지어요. 그리고 환한 햇살이 순간 번쩍이더니, 영문 모를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그림은 잠에서 깹니다.

꿈속에서, 유우는 그림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림이 자신에게 해주고픈 것이 많은 것도, 그만큼 유우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부끄럽고 쑥스러워 제대로 감사인사를 전한 적이 몇 번 없다고 해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이나 행동으로 그 속뜻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이지만, 가끔씩은 직접적인 표현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 사실을 유우 는 이제 막 알아차렸다고 해요.

그림은 그런 유우의 마음을 잘 받아왔어요. 자신은 언제까지나 유우에게 어린 아이 취급을 받고 있을 줄 알았는데, 유우의 속마음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곤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역시, 부하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라며 의기양양한 태도로 싱긋 미소 짓습니다. 자신이 제대로 유우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어 당분간은 기분이 매우 좋을 예정이에요.

이후 두 사람은 조금 더 서로에게 솔직해졌습니다. 맘에 들지 않는 것들, 고마운 것들 모두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조금 쑥스러웠는데, 두 사람이 더 이상 서로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듯, 시간이 지나면 이마저 익숙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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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는, 여러가지 가문이 존재합니다. 그 가문들은 각자의 대저택을 보유하고있으며, 그 저택에는 가문의 사람들을 보필하는 집사와 메이드들이 일하고있습니다. 그런 세계에서의 유우는 듣기만해도 유명한 디어 가문의 작은주인님이자 아가씨이며, 그런 유우를 옆에서 보필하는, 집사 그림이 있습니다.

둘의 첫 만남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그림은 유우의 집사로 일해왔고, 유우는 그런 집사 그림과 함께있는 시간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그때는 집사와 주인님의 관계가 아닌, 같은 친구라는 분위기가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있습니다. 넓고 넓은 저택이였으나, 또래의 친구를 만나는 것이 힘들고, 가문의 어른들도 유우에게 많은 관심을 주는것이 어려웠으니, 둘은 그 누구보다 소중하고 다정한 친구관계를 보여주고있습니다. 둘이 나이를 먹고, 점점 집사와 아가씨의 관계를 자각했을때도 둘은 그 관계에 대해 변함이 없는 듯 하네요.

그림이 생각하는 유우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잘 받아주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가끔은 자신이 조금 과한 행동을 했을때, 유우만이 자신을 바로잡아준다. 라는 마음을 보여주고있습니다. 가문의 사람들중에서 가장 마음이 편하고, 항상 곁에있어주고싶고, 항상 함께 둘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싶은 소중하고 다정한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하고있어요. 유우가 생각하는 그림은, 자신이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중에 한명이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자신 스스로도 표정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왜인지 그림의 곁에만 있으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표현하는것이 꺼리낌이 없는것이 그만큼 그림에게 많은 감정을 가지고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라는 마음을 보여주고있어요. 그림과 함께라면 심심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림이 사고를 치던, 또 다른 일을 벌이던, 유우에게 있어 모두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관계를 쭉 유지하고싶다. 라는 생각을 하고있어요.

둘은 기본적으로 장난스럽고, 조용하지도 않으면서 시끄럽지도 않는, 다정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보여주고있습니다. 그림이 분위기를 띄어주면 유우가 잘 받아주기도 하고, 유우가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면 그림 또한 그런 유우의 모습을 이해하고 곁에서 같이 책을 읽어주는 등... 서로에게 잘 맞춰주는 모습을 보여주고있습니다. 둘에게 있어 주인과 집사의 칭호는, 거추장스럽고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네요. 그것보다 더 좋은 관계의 이름도 있을텐데, 하면서 아쉬워하는 둘의 모습을 보여주고있어요. 둘을 바라보고있는 가문의 사람들은 둘의 관계가 상당히 이상적이기도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있어요. 친근감이 있는 둘이 관계도 좋지만, 조금은 가문의 이름을 생각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고싶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있습니다. 아무래도 가문의 어른들은 보수적인 생각이 강하게 가지고있는 듯 해요. 조금은 둘의 관계를 단호하게 바라보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고있습니다.

그런 둘의 관계지만, 언제까지고 사이가 좋은, 동료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둘의 관계에서는 당연하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틔우기 시작했어요. 먼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아챈 사람은, 유우입니다. 유우는 그림을 집사, 그리고 친구 그 이상의 감정으로 그림을 좋아하고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하지만 이내 곧 자신의 마음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요. 유우는 상당히 총명하고 머리회전도 빠르며, 분위기도 잘 알아채는 사람이였습니다. 가문의 사람들이 자신과 그림의 거리감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것을 잘 알고있었어요. 이정도의 마음은 자신은 둘째치고, 그림에게 안좋은 영향이 갈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차마 접을 수는 없겠지만, 짝사랑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 유우의 모습입니다.

반면에 그림은 자신이 유우를 좋아한다라는 마음을 조금은 늦게 알아채는 듯 합니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은 감정을 낯설어 했지어요. 그래도 그 누구보다 자신이 유우를 아끼고, 좋아한다는 마음이 연애적으로 느낀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어려웠지만, 한번 자각하고 나니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도 없을정도로 유우에게 돌직구적으로 행동하는 그림입니다. 자신은 유우를 특별하게 생각하고있고, 그 감정은 거짓된것이 아닌 친구 이상의 관계로 좋아하는 것 같다. 라는 고백을 하는 듯 해요. 고백은 로맨틱 하지도, 계획적으로 한 것도 아니지만, 이런 고백을 받은 유우는 이런 그림이 제일 그림답다. 라는 생각에 작게 웃어보이는 듯 합니다.

그림에게 고백을 받은 유우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듯 해요. 정말로 고백을 받으면 자신의 오랜 짝사랑이 이뤄진다는 것이지만, 그에 비해 가문의 사람들이 여러모로 안좋게 바라볼 것 같았어요. 자신은 둘째치고 그림에게 날아오는 시선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림은 그런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며, 유우의 감정이 제일 중요한것이 아니냐는 말을 합니다. 이 모습또한 유우에게 있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되겠지요. 모든 행동이나 감정에 솔직한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그림에게 한소리를 듣고나니, 유우는 알 수없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자신은 그림을 좋아했고, 가문보다 그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니 그 미래의 일이나, 주변의 일은 신경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우는 그림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림은 그런 유우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두손을 꼭 잡는 듯 하네요.

둘은 그렇게 연인이 되는 듯 합니다. 말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둘의 연인인 소식은 둘이 숨긴다고 해도 공공연하게 가문에 퍼져나갔습니다. 가문의 어른들은 머리를 짚으면서 꽤 화를 내는 듯 해요. 인정할 수 없다. 라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유우는 그런 가문의 어른들의 모습을 모두 예상했다는 듯,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도 편하게 사랑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이런 가문에 있을 필요가 없다며, 꽤나 단호하게 가문에서 나가겠다. 라는 말을 꺼내는 듯 해요. 애초에 이 가문에 있으면 정식적인 연인 사이도 인정받지 못할 뿐더러, 평생 그림과의 관계가 아가씨와 집사인, 틀에박힌 관계라면 필요없다고 자신의 감정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듯 하네요. 아마 인생 처음으로 가문의 어른들에게 큰 소리를 내는 유우의 모습에 벙찐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유우는 그림의 손을 잡고 방을 박차는 듯 합니다. 그리고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자신을 향해 웃어보이는 그림을 보고, 명예도 명성도 필요 없다며, 자신은 항상 자신을 진실되게 바라봐주는 그림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유우입니다.

둘은 가문의 저택에서 나오게되었습니다. 저택에 나와도, 유우는 디어 가문에서 있을때의 비상금과 개인 소유의 별장이 있어서, 그쪽으로 거처를 옮기는 듯 하네요. 물론 대저택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딱 단둘이 살기에는 좋았습니다. 둘은 더이상 집사와 아가씨의 상하 관계가아닌, 동등한 관계의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고있습니다. 둘은 둘만의 성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써 내려갈까요. 둘의 사랑은 이제부터 시작이니, 더더욱 깊고 많은 사랑을 써 내려갈 수 있을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미래에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있으니 두려울 것은 없어보입니다. 그림과 유우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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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비치지 않는 곳에서 만난 그림과 유우의 이야기

그림은 성채의 일원입니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어들기 딱 좋은 머리색을 갖고 있어 이제껏 죽거나 죽임당하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자신이 어쩌다 이곳에 흘러들어왔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림은 자신과 함께 성채를 나갈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요. 하루하루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먹고살고 있습니 다.
 
그림에게 있어 가장 오래된 기억은 비 오는 날, 어둡고 축축한 흙바닥에 누워 있었던 것 입니다. 그 때가 몇 살인지, 자신은 그 폭우를 어째서 맞고 있었는지도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습 니다. 하지만 그 때, 자신에게 우산을 기울여 주고, 그림을 건물 안으로 들여 담요를 덮어 주었던 한 사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림에게 처음으로 온기를 주었어요. 만약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함께 성채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성채 내에서 그림을 기억하는 이는 몇 명 없어요. 애초에 이 성채는, 누군가를 특정해 기억 하는 것이 무의미한 곳이니까요. 날마다 새로운 사람이 흘러들어오고, 새로운 사람이 죽어나갑니다. 생명이 촛불 꺼지듯 바스러지는 곳에서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는 것이 독입니다. 그림 또한 어느 때부터인가 성채의 그런 분위기에 적응해,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어요.
 
유우는 성채에 몰래 잠입한 기록관입니다. 무법지대인 성채의 구조와 그 내막을 파악하기 위해 특수 파견되었어요. 치안이 좋지 않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성채이기에, 정부에서는 성채를 허물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첫 단계가, 유우를 파견해 성채 내부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에요. 유우는 몇 개월 동안 성채에 여러 정보들을 기록하며 임무를 훌륭히 수행 중입니다.
 
유우는 처음에 성채에 들어오는 것이 그리 탐탁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성채에 최대한 정을 붙이지 않으려 했어요. 자신은 임무만 수행하고, 성채를 탈출하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유우는 이곳에서 생활하며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모든 인간은 달의 앞뒷면처럼 서로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유우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었던 한 가게 사장님은 그 날 저녁 빈집털이를 하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유우를 외지인이라며 짓궂게 놀려대던 아이는 하나밖에 없는 어린 동생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곤 했어요. 유우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내면적으로 한 차례 성장해나가는 중이었습니다.
 
유우는 성채에 들어오고서부터 지금까지 이름을 총 스물 두 번이나 바꾸었어요. 때문에 유우를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게다가 유우는 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유우가 떠난 구역의 사람들은 몇 개월이 지나서야 유우의 부재를 깨닫곤 했어요. 워낙 사람이 빠르게 들어오고 사라지는 성채이기에, 그 누구도 유우의 실종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 다. 때문에 이렇다 할 평판이 남아있지 않아요. 유우 또한 그걸 바라고 있고요.
 
그런 둘은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만납니다. 비 오는 날, 그림은 먹을 것을 빼앗으려 드는 건달들에게 쫓기고 있었어요. 그러다 골목에서 돌아 나오는 유우와 부딪힙니다. 그림은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손에 들린 밥이 먼저였어요. 그림은 유우에게 자신을 한 번만 숨겨 달라고 애원하고, 유우는 얼결에 큰 우산을 기울여 그림을 숨겨 줍니다. 건 달들의 습격을 피한 그림은 그만 바닥에 떨어진 유우의 소지품을 발견하고 말았고, 그 중 유우가 가장 소중하게 갖고 다니는, 이제껏 성채의 정보를 빼곡히 적은 노트를 발견하고야 말았 어요. 그림은 유우가 잠입 기록원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대신 성채를 나갈 때 자신을 함께 데리고 나가달라고 제안합니다. 유우는 잠입 기록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언제 성채에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었기에 순순히 그림의 제안을 받아들여요. 그렇게 둘은 서로의 비밀을 하나씩 품은 채로, 서로의 공범자가 됩니다.
 
그림은 어쩌면, 비 오는 날 자신에게 온기를 준 사람이 유우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림이 처량하게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건 몇 년 전이고, 유우는 고작 몇 개월 전에 성채에 들어왔으니 시기상으로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림은 유우가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어요. 유우는 그림에게 온기를 주었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그림의 오랜 꿈을 이루어 줄 마법사나 다름없어요. 유우는 그림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입니다. 훗날, 그림이 햇빛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때 유우의 손을 꼬옥 잡고 있으리라 다짐해요.
 
유우는 그런 그림을 제법 귀여워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자신에 대한 비밀을 누설할까 경계 하고, 감시하기도 했지만 그림의 순수한 관심과 애정에 마음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유우는 그림을 데리고 나갈 수 없어요. 자신은 복귀해, 성채의 철거에 기여해야 하니까요. 그 이후라면 모를까 임무가 끝나는 날 그림을 데리고 나가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림에게 덜컥 약속 을 한 것이, 이별의 날이 다가올수록 후회되기만 해요. 그림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되레 거짓말을 한 셈이 되어버렸다니. 어쩌면 유우 또한 이곳의 사람들과 같이, 달의 앞뒷면을 가져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추가질문

Q. 그림은 유우의 거짓말을 알아채게 되나요?
A. 그림은 유우의 거짓말을 알아채지만, 모르는 척 해줍니다. 유우는 그림을 밖으로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조금 더 성채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해도, 결국 유우는 그림의 손을 잡으러 올 것입니다. 그림은 그렇게 믿고 있어요.

Q. 유우는 무사히 탈출하게 될까요?
A. 유우는 이후 무사히 성채를 탈출해 복귀합니다. 자신이 이후 성채에 왔을 때, 그림을 찾을 수 있게 목에 스카프로 리본을 메어 주고 갔어요. 그림은 유우가 다시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매일 목에 메인 리본을 만지작거립니다.

Q. 훗날 둘이 다시 만나게 될까요?
A. 철거가 시작되기 직전, 유우는 성채에 몰래 숨어들어와 그림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옵니다. 두 사람 모두 훌쩍 커 버렸지만, 운명처럼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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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당혹스럽고 잔인한, "처음 뵙겠습니다."

세계에서 오로지 그림만을 잊은 유우×그런 유우의 소식을 접한 그림

유우는 의무실에서 눈을 뜹니다. 분명 안뜰을 지나가다 매지컬 디스크가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장면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후는 거짓말처럼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러나 어쩐지 목 뒤가 뻐근한 것이, 대충 상황이 짐작가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교내에서 위험하게 매지컬 디스크를 날리느냐고 투덜대며 몸을 일으키던 유우는, 자신의 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한 학생을 발견합니다. 고양이 귀와 꼬리가 달린 것을 보면, 사바나클로의 학생인 것 같아 보입니다. 설마 이 학생이 자신에게 매지컬 디스크를 날려서 사과하러 왔나… 유우는 몽롱한 머리를 필사 적으로 돌려봅니다.
 
그림은 매지컬디스크를 맞고 쓰러진 유우를 의무실까지 업어 왔어요. 함께 와 준 에이스와 듀스가 무사할 것이라고 위로해도,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로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야, 최근에 유우는 그다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걸요.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진 탓인지, 아니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그 가을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탓인지… 근래의 유우는 그림의 부름에도 반응이 늦었고, 기운도 없어 보였다고 합니다. 비교적 유우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적은 에이스와 듀스는 그 사실을 알 리 없지만요. 결국 그림은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고, 유우가 깨어날 때 까지 곁을 지켰다고 해요.
 
유우는 고민하다가 미지의 인물을 살짝 흔들어 깨웁니다. 자신과 인연이 없는 사바나클로의 학생이 왜 자신의 침대에 기대어 자고 있는지는 몰라도, 유우의 짐작으로 미루어 보아 지금은 분명히 수업 시간일 것이 분명하니까요. 더불어 자신이 어떻게 의무실까지 왔는지, 디스크를 날린 학생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해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그러나 유우가 마주한 것은, 혼란에 빠져 격정적으로 일렁이는 푸른 눈과 물기에 촉촉이 젖어 들어간 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였어요. 유우는 당황합니다. 갑자기 왜 우는 거야? 아니, 애초에, 이 사람은 어떻게 나를 알고 있지? 분명 유우는 오늘, 이 푸른 눈의 고양이 수인 학생을 처음 보는 데 말이에요.
 
그림은 그다지 머리가 좋다고 할 순 없지만, 마수답게 직감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습니다. 평소에는 이 능력이 유우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지만, 오늘만큼은 자신의 직감이 틀렸기를 바라요. 자신을 흔들어 깨운 유우와 눈을 마주쳤는데 도, 유우는 그 흑요석 같이 빛나는 눈에 자신을 비추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할 뿐 평소처럼 ‘그림.’ 하고 다정하게 불러 주지 않으니까요. 제아무리 그림이라도 이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 유우… 아무리 그림이 유우를 애처롭게 불러보아도, 돌아오는 답은 없어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양호 선생님이 대략적인 상황 설명을 해 줍니다. 일시적인 기억 상실이며, 매지컬 디스크에 의해 유우에게 스며든 마력이 자연적으로 증발한다면 아무 탈 없이 기억이 돌아 올 것이라고요. 본래 마력 없는 일반인이 갑작스럽게 마력을 받아들이면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유우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여전히 가슴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언가 가슴 속에서 울렁이며 유우의 차분한 사고를 방해해요. 뒤에서 ‘그림’이 훌쩍이며 우는 소리가 유우의 사고를 더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림은 유우가 아무 탈 없이 돌아올 수 있다는 소식에 안도합니다. 그리곤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며 유우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요. 평소에는 유우가 그림을 ‘감독’했다면, 유우의 기억이 돌아올 때 까지는 그림이 유우를 ‘감독’하면 되는 것입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원래부터 두 사람은 한 학생이었고, 늘 함께였으니까요. 물론 유우와 함께 있어도 어쩐지 외로운 느낌이 들곤 합니다. 두 사람의 추억을 앗아간다는 것은 이런 기분일까, 싶어 조금 쓰게 미소지어요. 그런 그림의 기분을 알았는지, 유우 또한 그림의 손을 힘주어 잡습니다. 지금 당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림뿐이기도 하고요.
 
유우는 조금 혼란스럽지만, 어쩐지 늘 다녔던 길과 안뜰, 복도와 교실이 새롭게 보입니다. 그림은 유우의 손을 꼭 잡고 어린아이 다루듯이 하나하나 알려주어요. 때때로 유우가 기억하지 못 하는, 두 사람의 추억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유우는 그림만을 잊은 것이지 NRC이나 이 마법 세계에 대해 잊은 건 아닌데도 말이에요. 필사적으로 어른스럽게 굴려는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보여서 숨죽여 웃기도 합니다. 양호실에서 눈을 뜬 이후로 줄곤 유우를 괴롭혔던 얕은 불안감이 스르르 녹아 사라지는 듯해요.
 
그림은 자신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따라오는 유우가 귀엽습니다. 나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 냐구~! 라며 가볍게 타박해보기도 하지만,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며 미소 짓는 것이 어미를 따르는 아기 고양이 같아요. 작년 이맘 때 즈음, 자신을 감독하던 유우도 이런 심정이었겠거니 하고 짐작해봅니다. 그 때의 자신은, 음… 사고뭉치 중 사고뭉치였죠. 유우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싶어 스스로의 과거를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된다고 해요.
 
소란스러웠던 오후를 정리한 채 낡은 기숙사로 돌아온 두 사람. 잘 준비를 모두 마친 채로 침대에 누운 유우와 달리, 그림은 베개를 들고 유우의 방 밖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 다. 그야, 지금 유우는 그림을 모르는 상태니까요. 낯선 남자아이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은, 유우에게도 큰 부담일 것입니다. 최근에 유우가 피곤해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림은,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하고 있어요. 유우와 함께인 것은 좋지만, 그 때문에 유우가 피곤해 한다면 그림은 유우에게서 한 발짝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소중한 파트너이기도 하지만, 대마법사가 되기 전에도 지켜주고 싶은 연인인걸요.
 
그런 그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우는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옆을 톡톡, 손으로 두드립니다. 이 빌런 소굴에서 살아남은 지 어언 일 년차, 유우도 어느 정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유우에게 있어 그림은 아주 고마운 존재입니다. 만약 NRC에 처음 떨어지고 만 그 날에도 그림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요.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짐작컨대 둘이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해 본다면 한 침대에서 자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판단해요.

그림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침대 안으로 미끄러져 뛰어 들어옵니다. 귀가 쫑긋거리며 한껏 기쁨을 표현하고 있어요. 방의 불이 꺼지고, 어느 덧 밤이 깊은 시각. 그림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끔뻑입니다. 고개를 돌려 보면, 옆에서 유우가 색색대며 자고 있어요. 간만에 꿈도 꾸지 않고 푹 자는 모양이라, 그림은 자신도 모르게 나직이 속삭입니다. 유우가 자신을 잊 어도 좋으니, 이대로 자신을 떠나지 말고 오래오래 있어 주었음 한다고요. 오래 전 유우와의 마음을 확인할 때, 유우가 결국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지만…역시 그림은 유우와 헤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대마법사가 되어 유우를 찾아가고 마리라는 목표도 변하 지 않았어요. 유우가 어떤 마법-저주-에 걸려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곁에 있으며 저주를 풀 방법은 없는 걸까요. 자신이 왕자님이 아니어서 함께 손을 잡고, 햇살 아래를 걷고, 하다못해 입을 맞추고 몸을 섞어도 저주가 풀리지 않는 것인지… 그림의 귀는 저절로 추욱 처집니다. 하지만 이내 기운을 내고, 전해지지 못할 말을 속삭여요. 자신이 꼭 유우를 찾아가겠다고요. 어느 나라로, 어느 세계로 가던, 하다못해 망각이라는 호수에 빠져도 유우를 구해 올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밤은, 그림의 다짐과 함께 깊어져만 갔습니다…….

추가질문

Q. 기억을 되찾는다면 기간이 얼마나 지난 후인지
A. 기억은 제법 빠르게 돌아옵니다! 나흘 정도 되었을 때 기억의 일부분이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일주일 즈음 지나자 모든 기억이 돌아왔거든요. 더불어, 자신이 기억을 잃었을 때 그림의 반응이라던가,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까지 모두 기억나기 때문에 한동안 그림을 떠받들어 모시듯 했습니다. 잔뜩 삐친 그림을 달래는 일도 겸해서요.

Q. 기억을 되찾고 난 후의 둘의 반응
A. 유우는 조금 멋쩍어하지만, 그림은 눈물을 뚝뚝 떨굴 정도로 기뻐했어요. 안도와 기쁨, 그간 유우가 자신을 몰라보았던 것에 대한 서러움 등. 유우에게 상황 설명을 하는데 울음이 잔뜩 섞여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새삼스럽게 그림의 안에서 유우가 얼마나 큰 지분을 차지하는지 깨달았어요.
유우는 조금 놀랐어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림이 그렇게 어른스럽게 대처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자신뿐만 아니라, 그림 또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톡톡히 깨달았다고 합니다. 더불어, 자신이 훗날 원더랜드를 떠난다면 그림 혼자 잘 생활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일부 해소된 기분이에요. 시원섭섭한 기분에 그저 미소만 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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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키스는 레몬 사탕 맛이 난다며, 정말로?

 
아직 그림과 유우가 사귀기 전에 일어난 일인가 봐요.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한 그림은 오늘 하루 종일 유우에게 말을 걸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약이 오른 유우는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해 보라며 그림을 자극했습니다. 제아무리 다짐을 해 봤자, 배가 고프면 언제 그랬냐는 듯 쏠랑 유우에게로 올 게 뻔하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마음을 좀 단단히 먹은 걸까요. 점심 시간이 지나고, 오후 수업이 다 끝날 즈음이 되어도 그림은 유우에게 한 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늘 수업 시간마다 지루하다고 투덜대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유우에게 등만 보인 채로 퉁퉁대고 있어요. 이쯤 되니 유우도 속상하고 약이 오릅니다. 이번에는 절대 먼저 사과하지 않겠다고 결심해요.

에이스와 듀스는 언제 둘이 화해할 지 내기를 걸었습니다. 에이스는 분명 삼 일은 갈 거라고 키득댔고, 듀스는 아무리 그래도 오늘 안에 화해해야 자신들의 등쌀이 멀쩡할 거라고 한 마디를 보태요. 그러거나 말거나, 유우와 그림은 이 미터 간격을 지키며 낡은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유우는 낡은 기숙사로 돌아가자마자 그림을 앉혀 두고 한 마디 할 작정이었어요. 그러나 몸보다 마음이 앞선 탓일까요. 유우는 그만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고 맙니다. 순식간에 시야가 반전되고, 손에 들고 있던 책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져요. 앞으로 삼 초만 더 있으면 유우도 저 책 꼴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뒹군 건 다름아닌 그림이었어요. 유우를 감싸고선 함께 굴러떨어진 겁니다. 그러나 그림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유우는 자신의 입술에 말캉하고 조금 건조한 무언가가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야에 가득 찬 그림의 푸른 눈과, 훅 들이끼치는 그림의 비누 냄새, 그리고 누구의 것인지 모르게 요동치는 심장 소리... 유우가 상황을 깨닫기도 전에, 그림은 외마디 비명을 꽥 지르더니 유우의 다리를 가리킵니다. 부하! 피가 흐르고 있다구! 유우는 그제서야 나뒹구는 통에 살짝 까진 무릎에서 피가 나고 있는 걸 깨달아요. 그림 녀석, 그렇게 퉁명스런 척 하더니 유우의 상처 하나에 울상이 되는 게 볼만합니다. 큰 소리를 듣고 달려 온 에이스와 듀스는 내기의 승패를 확인해야만 했어요. 에이스는 천 마들을 듀스에게 건넸습니다. 유우는 그런 것도 모른 채로, 그림의 손을 잡고 양호실로 향할 뿐이에요.

양호실에 도착한 두 사람, 간단한 타박상 진찰을 받고 약과 밴드를 받습니다. 그러다 두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든 양호 선생님의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그림과 유우 모두 입술이 어디에 부딪힌 듯 부르텄는데 혹시 입술에 바를 약이 필요하냐는 질문이었어요. 그 말 한 마디에 그림과 유우는 방금 전, 두 사람이 어떻게 접촉했는지를 떠올려냈고... 그림은 귀의 불이 펑펑 솟아오를 정도로 펄쩍 뛰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어요. 유우는 그런 그림을 보며 마치 처음 입 맞춘 어린아이같이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유우의 심장도 마냥 침착한 건 아니지만요.

그림은 정말, 오늘 해가 질 때 까지 유우에게 아무 말도 안 걸 생각이었습니다. 나름 유우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유우는 자꾸만 그림을 동생 대하듯 하니까요. 그림이 유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일부러 알려 하지 않는 태도가 그림의 심기를 계속해서 건드려왔다고 합니다. 유우에 대한 걸 전부 알고 싶은데도, 유우는 늘 미소를 지으며 답을 회피하기 바빴어요. 그런 유우가 얄밉고, 서운합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다르게, 몸은 유우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잽싸게 움직이지 뭐예요. 비록 왕자님처럼 상처 하나 없이 멋지게 유우를 구해주진 못 했지만, 유우의 입술이 닿던 순간만 생각하면 심장이 마구마구 뛴다고 합니다. 어쩐지 유우와의 비밀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에요.

이런 경우에는 둘의 키스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양호 선생님이겠죠. 그림은 이미 유우와의 키스 때문에 양호 선생님에게 키스 여부를 들켰다는 걸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새카맣게 잊어 먹은 모양이네요. 곧장 낡은 기숙사로 돌아 온 그림은 자신의 방에서-그래 봤자 유우의 방 옆이지만요.- 이 사태를 어떻게 할 지 고민 중이에요. 유우에게 아무 일 없었던 듯 태연히 행동해도, 꼬리가 잔뜩 빳빳해져 유우를 인식하고 있음을 금방 들킬 게 분명합니다. 그러면 유우에게 더욱 동생처럼 보일 게 분명해요. 안 그래도 자신의 이성으로 보고 있지 않은 유우인데, 사고로 시작된 키스에 기뻐한다는 사실을 들킨다면 이 관계는 절대 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림은 유우도 키스를 의식하고 있는 지 궁금해요. 어쩌면, 자신처럼 유우도 이 키스에 설레어한다면... 지금처럼 정체되고 불균등한 관계가 아닌, 조금 더 로맨틱한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으니까요.

유우는 그림과의 키스 자체가 아니라, 양호 선생님께 꼬리를 밟힌 게 뭇내 쑥스러운 모양입니다. 이 장난꾸러기들이 가득한 학교에서 이 소문이 어떻게 와전될 지가 걱정스러운 모양이에요. 동시에 그림이 그에 어떻게 반응할 지... 유우로서는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것들만 한가득입니다. 그림과 얽히면 늘 이렇게 사건이 사각지대로 튀곤 해요. 그런 점이 유우에게 즐거움을 갖다주기도 하지만... 그림에게 더 나은 엔딩을 보여주기 위해 늘 미래를 예측하고 있는 유우에게는 간혹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때문에 최근 들어, 더욱 그림에게 정형화된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림이 이렇게나 속상해할 지도 몰랐지만요... 여러모로 생각히 복잡해져서, 유우는 평소보다 더 늦게 잠에 들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두 사람은 이전과 같이 행동합니다. 그림은 자신의 마음이 들킬 까 조마조마했지만, 이전과 같은 유우의 반응에 안도하면서도 내심 서운했던 모양이에요. 그러나 자신이 또 서운한 반응을 내비치면 유우는 그런 그림에게 딱딱한 반응을 보여 줄 게 분명합니다. 그림이 원하는 것은 그저, 유우의 솔직한 감정표현일 뿐인데도요... 유우가 그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림에게서 무얼 바라는 지, 그림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유우의 입으로 듣고 싶어요.
여러모로 키스 사건을 통해 로맨틱한 관계가 되길 바랐는데, 그림의 기대와는 엇나간 상황이 야속합니다. 이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마는 그림은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져요.

추가질문

Q. 그림은 마수라 인간들의 스킨십엔 큰 관심 없을 것 같았는데 '키스' 라는 행위에 대한 그림의 생각은 어떤가요?
A. 인간으로 변하기 전에도, 변한 후에도 그런(?)지식을 그림이 얻을 수 있는 루트는 제법 많았습니다. 애인과 스킨십 이야기를 조심성 없이 떠들어대던 학생들이나, 유우가 유명한 영화라며 얻어 온 비디오 속 키스 신, 시내에 나가면 꼭 한 번씩은 보았던 커플들의 다정한 모습...
키스가 정확하게 무슨 행위인 지는 몰라도, 입을 맞추고, 손을 잡고, 몸을 가깝게 붙이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행동이라고 인지하고 있었어요. 때문에 유우와 키스했을 때, 이런 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해야 하는 것이라고 펄쩍 뛰었다고 합니다. 물론 유우가 다른 사람과 키스하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았지만요.

Q. 그림이 유우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유우를 친구, 하우스메이트, 보호자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림이 위험에 처하면 유우는 두말하지 않고 달려옵니다. 그런 유우에게 애착을 느끼는 건 당연했고요. 하지만 사람이 된 이후, 그림은 유우와 동등한 관계가 되고 싶었어요. 유우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 처럼 유우를 지켜주고, 슬플 땐 어깨를 빌려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손을 잡는...그런 은혜갚기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뭐라고 칭하는 지 몰라 고민할 때, 에이스가 무심하게 '너 그거 감독생을 좋아하는 거 아냐?' 라고 한 마디 던진 게 그림에게는 그야말로 반환점이었다고 해요. 그 때부터 '유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혼자만의 도전을 시작한 모양입니다.

Q. 이후 이 사건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나요?
A. 목격한 양호 선생님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어른이니까요. 덕분에 소문도 나지 않았구요. 에이스가 둘의 사이를 의심했지만, 덤덤한 유우의 반응 때문에 이내 흥미가 식었습니다. 때문에 유우가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여유를 찾은 유우는 그림에게 조금 더 친절해질 수 있었어요. 그런 유우의 반응을 본 그림은 '유우는 스킨십을 좋아한다' 고 잘못 착각하고 말았습니다.

Q. 이 사건 이후로 스킨십이 더 잦아지나요...
A. 네! 은근슬쩍 손을 잡으려 들고, 괜히 식당에서 줄을 설 때 바싹 붙어 보기도 하고... 유우도 그런 그림의 행동에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의 오해는 점점 깊어져만 갔어요. 하지만 키스는 차마 용기 내기 어렵다고 합니다. 단순히 손을 잡는 것보다 키스가 몇 배나 어렵다는 건, 그림도 익히 알고 있으니까요. 유우가 조금 더 그림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 때 요청해볼까... 하고 여러모로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유우가 그림에게 보여주는 호의나 감정의 깊이를 잘 알고 있는 그림이니까요. 적당히 타이밍을 보는 단계인 것 같아요.